“그거 지나간 달 밥값이래.” 하고 말을 하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잠자다 깨나는 사람처럼 “응?” 하고 놀라더니 또 금시에 백지장같이 새하얗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습니다. 봉투 속으로 들어갔던 어머니의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이 지전을 몇 장 끌고 나왔습니다. 어머니는 입술에 약간 웃음을 띠면서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. 그러나 그것도 잠깐, 다시 어머니는 무엇에 놀랐는지 흠칫하더니 금시에 얼굴이 새하얘지고 입술이 바르르 떨렸습니다. 어머니의 손을 바라다보니 거기에는 지전 몇 장 외에 네모로 접은 하얀 종이가 한 장 접혀 있는 것이었습니다.
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는 모양이었습니다. 그러나 무슨 결심을 한 듯이 입술을 악물고 그 종이를 차근차근 펴 들고 그 안에 쓰인 글을 읽었습니다. 나는 그 안에 무슨 글이 씌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으나 어머니는 그 글을 읽으면서 금시에 얼굴이 파랬다 발갰다 하고 그 종이를 든 손은 이제는 바들바들이 아니라 와들와들 떨리어서 그 종이가 부석부석 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.
- 주요섭, <사랑손님과 어머니> 중에서
사랑손님, 이거 완전 요물이네요. 편지에 대체 무슨 말을 써놓았기에 그 짧은 글을 읽는 동안 옥희 엄마의 얼굴이 금시에 발갛게 물들었다가 금시에 새하얘지고 금시에 파래졌다가 이내 다시 발개지는 것이란 말입니까.
금시에라는 말이 낯설어서 그게 얼마큼의 시간을 뜻하는지 애매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. 금시에는 이제 금今에 때 시時 자를 써서 지금, 바로, 롸잇나우를 뜻합니다.
<사랑손님과 어머니>가 발표되었던 1935년 즈음에는 금시에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던 모양인데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는 금시에가 줄어든 금세라는 말이 더욱 익숙하지요. 금세보다 금새라는 잘못된 표현이 더더욱 익숙하다는 게 함정이긴 합니다만.
하여튼 간에 편지를 읽는 옥희 엄마 얼굴은 실시간으로 붉으락푸르락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. 사랑손님이 옥희 엄마를 아주 그냥 들었다 놨다, 어! 이거 뭐 여자 후리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야! 모셔다가 연애편지 쓰기 특강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는데 소설 속 인물인지라 아쉽기 그지없네요.
<함께 알기>
그사이, 고사이, 이사이, 요사이, 밤사이는 각각 그새, 고새, 이새, 요새, 밤새로 줄여 쓸 수 있습니다.
<의미 알기>
금세
지금 바로. ‘금시에’가 줄어든 말로 구어체에서 많이 사용된다.
- 약을 먹은 효과가 금세 나타났다.
금새
물건의 값. 또는 물건값의 비싸고 싼 정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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